“아름다움이란 우리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숙지성(熟知性)을 의미합니다. ‘모름다움’의 반대가 아름다움입니다. 오래되고, 잘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새로운 것, 잘 모르는 것이 아름다움이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면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오늘의 미의식입니다. 이것은 전에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소위 상품미학의 특징입니다. 오로지 팔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상품이고 팔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상품입니다. 따라서 광고 카피가 약속하는 그 상품의 유용성이 소비단계에서 허구로 드러납니다. 바로 이 허구가 드러나는 지점에서 디자인이 바뀌는 것이지요. 그리고 디자인의 부단한 변화로서 패션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결국 변화 그 자체에 탐닉하는 것이 상품미학의 핵심이 되는 것이지요. 아름다움이 미의 본령이 아니라 모름다움이 미의 본령이 되어버리는 거꾸로 된 의식이 자리 잡는 것이지요.”
-신영복의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중
다음 주에 있을 올해 마지막이 될 중요한 업무를 준비하느라 회사에 혼자 남아 있던 중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1시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출근하기 전, 책장에 꽂혀있던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책의 색깔이 영롱~한 것이 꼭 한구절이라도 읽어야만 할 듯하여 한 페이지 펴보니 위와 같이 아름다움에 대해 선생님의 깊은 이치로 설명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제 각각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에 저마다 보고 느끼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를 수 밖에는 없겠습니다만 근래에 돌아가는 세상 풍경을 보면 젊고 신선하고 새로운 것, 그것이 방송 미디어에 의해 표현된 상품이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 그러한 것들에 우리는 속된 말로 뿅 갑니다. 바로 이것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상품미학에 의해 전도된 우리의 아름다움의 가치라고 볼 수 있겠지요.
물론 선생님의 말씀과 같이 아름다움이 이미 알고 있는 오래되고 은은한 것에 있음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아름다움은 새롭고 참신하고 젊은 것에도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는 '몸의 아름다움'이 강조되는 시대아닐까요? 그만큼 우리는 그동안 정신의 아름다움과 영혼의 아름다움만을 강요당해왔으니 충분히 '몸의 아름다움' 역시 확~ 고개를 젖히고 아름다움의 영역 안에 큰 자리 얻을 시간을 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젊고 아름다운 젖가슴이 아름다운 것은 역시 진리니까요.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아름다움에는 두가지 기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즉, '그 아름다운 대상이 맛이 있는가 아니면 멋이 있는가'라는 것이지요. 맛있는 대상은 그 반응이 즉각적이어서 이를테면 음식의 맛을 혀로 대어보면 그 즉시 달다 쓰다 떫다 짜다 하는 것을 대번에 알 수가 있습니다. 또 그것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지고 맙니다. 즉 즉시성이 맛의 특징입니다. 더구나 맛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같은 맛을 계속 음미하다보면 효용성이 점차 감소합니다. 금방 싫증이 나고 더 나은 맛을 추구하는 행동을 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멋있는 대상은 그 반응이 느리게 나타납디다. 녹차와 같다고 할까요? 처음 맛을 몇번 보면 그 맛이 떫고 하찮게 여겨져 멀리하게 되다가도 몇번 음미하고 그 다가가는 관계에 익숙해지다보면 어느새 그 은은한 향기와 빛에 취하게 되더란 말입니다. 저는 멋있는 대상으로서의 멋진 예를 산에서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지리산입니다. 지리산은 맛있는 산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모양새가 화려하지도 않고 구불구불한 것이 어딘가 우리 동네 아줌마를 닮아 있습니다만 자꾸 오르고 내리기를 내 집처럼 하다보면 어느새 그 멋에 푹 빠지게 되더라는 것이죠. 아 그렇다고 제가 아줌마들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하여튼 아름다움에는 맛과 멋의 기준이 그렇게 다르다는 것을 신영복 선생님을 통해 상기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론은 '맛과 멋을 겸비한 여인이여 내게 오라'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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