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기분좋게 느리게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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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전엔 말야

20대 후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처음 오래 달린 때가 생각난다. 고작 1KM 달려놓고 힘들어서 난감. 그런데 난 그때 이후 거의 매주 한번 이상 오래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기를 20년째니까 나름 고인물?

죄의식에서 출발한 달리기 습관

왜 달렸냐고 한다면 어쩌면 달리기가 가장 거추장스러움이 없어서랄까? 준비할 게 없다. 티셔츠와 반바지에 운동화만 있으면 끝이니까. 장소도 그냥 운동장, 아파트단지 한바퀴, 그것도 안되면 한적한 인도를 달리면 된다. 그래도 왜 달렸냐고 한다면 땀내서 달리고 마시는 한잔의 맥주가 좋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담배피고 술마셨던 죄책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달리고 나면 몸을 조금 청소하는 느낌이었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안 달리면 몸에 나쁜게 쌓이는 느낌. 머리에 니코틴과 알콜만 덮어버리는 느낌. 아마 그래서 좀 살아보자고 달렸던 것이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달리기 둔재인가?

그 사이에 인기없던 달리기가 어느새 최고로 대중적인 운동이 되었다. 여유있게 등록되던 달리기대회는 이제 대학교 수강신청만큼이나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다고 내 달리기삶이 달라진 건 없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못달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새롭게 입문한 주위 사람들 대부분 10km를 60분 내에 달린다. 나는 20년을 해도 여전히 버거운 일인데 말이다. 아무리 달리기는 혼자 달리는 운동이라지만 대중적인 운동이 되니 비교가 안될까? 그래서 속도를 높여보고 거리도 늘려보지만 버겁다. 힘들다.

글을 쓰는 지금도 좀 마음이 욱해진다. ‘내가 왜? 이 정도 달렸는데 왜 이 모양이냐?’ 하고 싶다. 그래도 어쩌는가? 달리기는 어차피 혼자 달리는건데 내 페이스대로 달리면 되는것 아닌가?

경쟁하지말고 천천히 기분좋게 달리자: 슬로우 러닝

그래서 찾아보니 오호라, 경쟁을 포기한 러너들을 위한 ‘슬로우 러닝’ 혹은 ‘슬로우 조깅’이라는게 있다. 경쟁을 포기했다는 건 좀 오버이고 즐겁게 달리는 달리기. 일본에서 유행하는 건데, 이 방식에 따르면 다 필요없고 그냥 달리면서 말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정도로만 달리라는 것이다. 이렇게만 하면 너무 없어보이니까 여기에 한가지 추천하는 달리기 방식을 넣었는데, 케이던스를 짧게 가져가라는 것. 즉 분당 180번 발을 내딛어라는 것이다. 꼭 180일 필요는 없는데, 대충 그게 기준이다. 키가 크건 작건 나이가 늙었건 어리건간에 180회. 이게 슬로우 러닝의 전부에 가깝다.

리듬속의 그 달리기: 케이던스 달리기

잠깐 분당 180회? 그건 어떻게 확인하나? 의외로 측정할 방법이 없어서 집에 기타칠때 쓰던 휴대용 메트로놈 들고 뛰어봤는데, 엇, 난 그 180회도 어렵다. 되는게 없다. 그래서 170정도로 뛰어봤는데 뭐지? 이 리듬감은? 메트로놈으로 케이던스를 고정시켜놓고 달려보니 의외의 리듬감이 생기고 마음이 덜 힘들어진다. 그래서 찾아보니 케이던스 러닝이라는 게 있고 이 케이던스 러닝이 부상도 줄이고 페이스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되는 방식이다. 확실히 그냥 달릴 때보다 리듬을 타기 쉬워지면서 달리는 맛이 증가한다. 이걸 왜 이제까지 몰랐던거지? 인생이 얼마나 짧은데 20년동안 모르고 달렸다는게 말이 되는가?

깊고도 오묘한 슬로우러닝의 세계

사실 이것말고도 슬로우러닝으로 풀어갈 내용은 적지 않다. 나름 오묘한 세계. 그래서 앞으로 남들보다 빨리 달리지는 못해도 오래 늙어 죽을 때까지 달리기 위한 슬로우러닝의 세계를 연구해서 글로 소개할 예정이다. 사실 슬로우러닝을 시작하면서 지난 20년간 참 애썼다라는 생각이 들고 지난 20년간의 나에게 애도를 표하지 않을수가 없다. 훨씬 더 즐겁게 달릴 수 있었는데 말이다. 세상에는 나처럼 빨리 달리기 어려운 사람도 많지만 즐겁고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달리기를 즐기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게 슬로우러닝에 대해 다룰 것이다. 70대에도 즐겁게 달리는 노인이 되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