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S/W산업의 그늘: B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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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안 그랬을지 모르겠는데 21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 부쩍 IT관련 기업고객들이 요구하기 시작한게 제품(HW/SW) 구매 전 BMT 즉 벤치마킹 테스트이다. 경쟁입찰을 통한 구매 프로세스를 보다 투명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제품 선정 이유를 보다 정량화하기 위해 이러한 절차를 거치는 게 보통인데,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두달 정도를 소요하게 된다. 단지 제품 성능평가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적용하게 될 시스템과 미리 붙여보는 pre-project 성격의 것도 존재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BMT라는 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절차인데,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PoC(Proof of Concept)이라는 BMT와 유사한 형태의 절차가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랑 다른 것이 있다. 이렇게 BMT를 참여하는 업체는 이 경쟁에서 승리해서 팔기 위해 말그대로 그 업체가 가용 가능한 최고 엔지니어와 아키텍트들을 투입시킨다. 그럼 그 인건비는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는 무조건 공짜다. 제 아무리 유명한 컨설턴트나 아키텍트나 엔지니어가 투입되어도 무조건 공짜다. 반면에 외국은 당연히 기업고객이 돈을 지불한다.

그러니 기업 고객 입장에서는 BMT 절차가 약간 수고롭기는 하지만 결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BMT를 통해서 프로젝트에 필요한 여러 지식도 검증할 수 있고 소스코드도 왠만큼 핵심적인 것들을 받아볼 수 있고(과장되어 말하면 BMT에서 나온 산출물만으로 프로젝트에 필요한 모든 구현물이 완성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이러한 길고 긴 절차를 통해 제품 가격도 계속 깎아내리게 할 수 있으니 엄청난 이익이 아닐 수 없다. 날이 갈수록 고객들의 수법도 얍삽해지고 영악해지고 사악해진다.

특히 아주 고약한 고객의 경우에는 이러한 경우가 있는데, BMT를 여러 번 하는 거다. 정말 제품을 살 의향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그저 공부해볼라고, 혹은 검토 차원에서, 가격이나 Down시켜볼라고 BMT를 여러 번 한다. 그러면 제품을 팔려는 업체는 몇명 되지도 않는 엔지니어나 아키텍트들을 정말 필요한 곳에 써먹지도 못하고 물만 먹게 된다. 게다가 경쟁을 통해서 점점 제살 깎기식의 가격 down이 일어난다. 1원짜리 입찰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방법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비슷한 방식의 입찰은 벌어진다. 더더구나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렇게 겨우 겨우 BMT에서 1등을 해도 제품 선정이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방식이 아닌 여러가지 정치적인 이유에 의해 계약을 앞둔 하루 이틀 사이에 제품 선정이 바뀐다.

이러니 우리나라의 SW산업이 제대로 커나갈 리가 없다. 내가 몸담고 있는 업체는 그나마 견실한 외국계 기업이니까 버티지만 중소SW업체들이 이런 물먹는 경우를 두어번 당하면 바로 부도가 난다. BMT 절차 자체가 없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BMT에 따른 비용은 당연히 고객이 일정부분 부담해야 우리나라 S/W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이 부분에 대해 JCO에서도 깊이 인식하고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엔지니어들의 힘은 약하기 이를데가 없다.

가만히 2007년을 헤아려보니 1년간 내가 수행한 BMT/PoC가 어림잡아 16건 정도 되었다. 한달에 1.5건을 한 셈이니 거의 정상적인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고 봐야겠다. 덕분에 많은 것을 얻었고 배웠지만 올해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또 다른 앎의 장으로 나아가야지. 더이상 BMT는 하고싶지 않구나. ㅜㅜ


댓글

Tuna · 2008/01/23 09:05

‘외국에선 비용을 지불한다’에서, 일본은 빼어 주셔요. 일본에서도 BMT는 웬만큼 규모있는 고객사에서는 다 공짜랍니다.

Yozz · 2008/01/23 09:15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ㅜㅜ

Magicboy · 2008/01/29 10:33

예전에 외국인 교수님이 뭘 부탁하셔서 좀 검토해보다가 이건 못하겠어요~ 했더니.. 검토한 기간만큼의 페이를 지급하겠다라고 하시더군요..-_-a.. ( 이런 점에서 보면.. 정말 문화의 차이인듯도 합니다. )

그리고 고객사의 입장에서 다시 말해보면(^^; ) .. 영업 관련된 분들이 와서 제품을 소개할때.. 무조건 다 된다라고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고 막상 까보면.. 안되고.. 추가 제품 구매가 필요하고 … 그냥 협력 업체 직원분들이 와서 날코딩으로 해당 기능을 바닥부터 구현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래서 기업들도 BMT 나 POC를 요구하는게 안전하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듯 합니다. ( 영업하는 분들이 BMT나 POC를 무료제공 하는걸 먼저 제의하면서 타사보다 영업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 측면도 다소…. )

그냥 서로 솔직하게 다 까놓고.. 어떤 어떤 기능은 좀 미진하니 이부분은 다른 회사 제품을 이렇게 쓰면 Best of Breed 로 만들수 있다~ 라는 식으로 하는게 서로서로 낭비도 줄이고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쩝..

Yozz · 2008/01/29 23:16

그러게요… 정말 정말 동감입니다. 우찌해야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