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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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차산 등산기

나는 새해 첫 날이면 어김없이 스승이신 김익승선생님과 여러 제자들과 같이 아차산에 올라가 작년에 아차산 꼭대기 어딘가에 고이고이 묻었던 작년의 소망종이를 열어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다시금 새해의 소망을 작은 종이에 적어서 그것들을 모아모아 우리가 타임캡슐이라 부르는 보온통에 묻어두고 온다.

지난 1년간 바쁘게 사는 중에 잊혀졌던 만큼 꼬깃꼬깃 꾸겨지고 조금 빛 바랜듯한 지난 해의 소망종이를 읽어볼 때면 모두들 왠지 창피한 지 등을 돌려 혼자서만 읽어본다. 뭐 대단하고 비밀스러운 소망이야 있었겠느냐만 그동안 지난 해의 소망이 무엇이었는지 조차도 잊었었던게 자못 부끄럽고 그것을 못지킨 게 또 못내 아쉽기에 남모르게 작은 한숨 짓는가보다. 하지만 어쨌든 지난 일, 묵은 일이 아니겠는가. 비록 작심삼일 짜리 희망과 소망 뿐일지언정 또다시 다가온 새해의 소망과 약속을 적어서 굳은 다짐과 결의를 해본다. 아마도 올 해는 조금, 작년 보다 나아지겠지. . . 하는 마음으로 다시 타임캡슐은 새로운 희망뭉치를 담고는 아차산 어딘가에 묻힌다.

이렇게 아차산에 1년짜리 유통기한 가진 소망을 묻어두고 새해를 시작하는 건 이제는 어쩌면 나에게 당연한 행사 내지는 절차가 되버린 듯하다. 우리가 매 해마다 누군가의 생일을 맞아 그 존재의 고마움에 축하하듯,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듯이, 새해가 태어났으니 앞으로365일 매번 만날 새 해의 생일을 축하하고 묵은 해가 죽었으니 그 아쉬움에 제사를 지내고 묵은 소망이 가고 새로운 소망을 품었으니 또 축하할 일이다.

그래, 해가 가면 갈 수록 못 지키고 못 이루는 것들도 참으로 많아지는 게 서럽고 아쉬운 일이겠지만 또 그만큼 지키고 싶고 이루고싶은 것들도 많아지니 이래저래 쌤쌤이다 싶다. 서푼짜리 소망이라도 아직 써볼만한 게 남아있다 싶으니 그래도 제법 살만하다싶어 산에서 마시는 막걸리가 잘 들어간다. 그래서 새해의 아차산 등정은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우리 배워서 남주자 식구들과의 대화와 동행이 있기에 너무나 유쾌하면서도 해가 갈 수록, 나이가 들을 수록 무거워지는 산행 발걸음만큼이나 다가온 새해의 묵직한 무게도 느껴볼 수 있는 값진 시간이 아닌가싶다.


걸림없는 인생

나는 그간 ‘무언가를 위해 질주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었다. 주위에 비어있는 게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잠시라도 무언가를 위해 펜을 잡고 키보드를 잡고 쉴새없이 발을 움직이지 않고는 못배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무언가를 위해 질주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질주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무언가를 위해’ 라는 것이 없으면 또 관성의 법칙이 있어 한 없이 불안하고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 되버린 것은 아닌가.

그렇게 한동안을 고민을 해보다 깨달은것은, 나는 ‘무언가를 위해’ 눈을 번뜩이며 살아왔지만, 겉으로는 집안을 위해 돈을 위해 삶을 위해 지혜를 위해라며 그 ‘위해’를 위해 부지런을 떨었지만 사실 안으로 들어가보면 ‘나를 위해’라는 마음이 컸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나란 놈을 지독히도 사랑했다. 짧은 얼마 안되는 이놈의 인생이 너무나도 귀하고 소중해서 그 특별히도 사랑스러운 나를 위해, 나의 인생을 위해 뛰어다녔다.

사람이란게 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예수, 부처 아닌담에야 사람이란 결국 시대 안에서만 숨쉬고 생각하는존재다. 시대가 엿같으면 그 시대의 사람의 인생 역시 엿같음을 벗어날 수 없다. 시대가 태평성대면 그 시대의 사람의 인생 역시 아주 잘되면 태평성대로울 수도 있겠다. 부모 잘 만나야 인생이 호화롭듯 시대 잘만나야 인생 역시 복된 것. 부모를 제 맘대로 선택할 수 없듯이 시대 역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담에야 시대와 불화를 겪을 필요는 없다. 주어진 시대라는 무대를 어떻게든 최대한 이용하고 시대가 주는 향기를 있는 힘껏 맡고 가능성을 열어봐야 한다. 어쨌든 그 시대안에서 우리는 꽤나 멋지고 복된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시대가 달라도 별로 다를 바 없는 인생은 살지 말아라. 주위와 담을 쌓고 가늘고 길게만 사는 인생에 너무 가치를 두지 말아라. 태어나고 자라서 결혼하고 애낳고 그러다가 죽는 인생은 전 시대를 통털어 내가 아니어도 이미 수천억의 인류가 경험해본 것이다. 이 시대는 나를 그렇게만 살라고 이 시대에 나를 낳은 건 아니다. 그렇게만 살거라면 구석기시대로 나를 태어나게 했을 것이 아닌가? 하, 그렇다고 제 그릇 크기도 생각 못하고 엉뚱한 짓거리를 하란 게 아니다.시대를 초월한 가치는 또 그 가치대로 정말 소중하지만 그 시대만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치도 너무나 소중한 걸 말하는 것이다. 지금도 변해가고 있는 이 시대의 흐름을 최대한 느껴보고, 최대한 걸림없이 살아보는 거다. 그래 나는 졸라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다. 어둡고 칙칙한 방안에서 웅크려 있기에는 시대의 소품들이 너무 멋지고 화려하다. 만지고 느끼고 말하자. 그래서 있는 힘껏 걸림없이 살도록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