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편지로 바라본 예술가가 필요한 이유
예술가는 낚싯대의 찌같은 존재. 낚싯대의 찌처럼 춤 추는 존재. 어둔 물속에서 물고기가 1밀리 미터쯤 미끼를 잡아당기면, 혼자서 그 열 배 스무 배로 춤을 추어서 겨우 1밀리미터쯤 잡아당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 그 우스꽝스러운, 그래서 우리가 알고도 피하고 모르고도 피하고 무서워서도 피하는 생의 가지가지 모든 고통들이 실은 인생의 주요 질료라는 것을 알려주는 존재가 바로 예술가.
공지영이 어느 소설에선가 이야기했다던 예술가의 모습. 어둠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그 어둠속에 갇힌 자신이 스스로 너무 비참해 울먹이며 하소연할 때. 그 고통이 비록 세상 누구라도 한번쯤 정도는 겪을 나이테와 같은 것이라고 해도 그 고통에 갇힌 자신은 큐브에 갇힌, 드라이버 하나 가지지 못한 불가항력 상태의 맥가이버 신세처럼 처량하여 울먹이고 있을 때, 그 때 누군가 다가와 호되게 꾸짖으며 ‘일어나라. 그깟 고통 누구나 한번쯤 겪는 일상이다.’라고 하는 이보다는 부축해주며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이가 훨씬 눈물겹도록 고맙기 마련이다. 예술가란 바로 그러한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의 존재 이유가 생의 고통만을 노래하는 자선사업가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calmglow는 때로 평소에 알아채지 못했던,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숨쉬며 살아가고 같은 삶을 사는 평범함 그 속에서도 또 다른 의미와 지혜를 발견해내는 예술가의 결실을 만나 높은 희열을 느끼곤 한다.
이를테면 시인 이상은 매춘하러 아내가 외출간 그 적적하고 공허한 방 한구석에서 아내의 버선을 바라본다. 그는 버선에서 세가지를 발견한다. 첫번째는 그 버선이 마치 자신을 비웃고 있는 듯한 느낌 두번째는 그 버선도 아내처럼 어딘가로 도망갈 것만 같은 느낌 세번째는 그 고무신도 자신처럼 뱃 속이 비어있다는 것. 이 놀랄 수밖에 없는 이상의 사물을 바라보는 감수성에서 calmglow는 예술가의 또 다른 존재 이유와 능력을 발견한다.
아래 시는 안도현의 ‘제비꽃 편지’라는 시이다. 이 시는 어찌보면 너무나 평범할 수 있는 삶의 질료를 사용하여 또 다른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명작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삶에는 희망과 상상과 상징이 만들어낸 세계가 실재하는 현실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이어주어 삶을 더 풍족하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가 아닐까?
제비꽃 편지 -안도현
제비꽃이 하도 예쁘게 피었기에 화분에 담아 한번 키워보려고 했지요 뿌리가 아프지 않게 조심조심 삽으로 떠다가 물도 듬뿍 주고 창틀에 놓았지요 그 가는 허리로 버티기 힘들었을까요 세상이 무거워서요 한 시간이 못 되어 시드는 것이었지요 나는 금세 실망하고 말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것도 없었어요 시들 때는 시들 줄 알아야 꽃인 것이지요 그래서 좋다 시들어라, 하고 그대로 두었지요
그리고 아래 링크는 백창우씨와 같이 노래마을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이수진씨(현재는 이름을 ‘나무’로 바꾸고 활동 중인 듯)가 제비꽃 편지에 곡을 입혀 부른 노래이다. 이수진씨는 백창우씨와 EBS ‘공감’에 출연한 것을 얼핏 보았을 뿐인데 한눈에 꽂혀버릴만큼 calmglow가 좋아하는 가수이다. calmglow의 이상형과 많은 부분 맞닿아있는.. ^^
이수진(나무)씨의 ‘제비꽃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