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아이티 토종 돼지가 전멸했던 역사는 지구화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작고 검은 크리올 돼지는 아이티 농촌 경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아이티 사람들이 아주 정성스럽게 길렀고, 아이티 기후와 조건에잘 적응한 돼지였습니다. 손쉽게 구할수 있는 음식찌꺼기를 먹을 뿐 아니라 음식 없이도 사흘은 지낼 수 있었습니다. 시골 가구의 80-85퍼센트는 돼지를 기르는데, 돼지를 기르는 것은 토양을 비옥하게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농민의 개인 저축은행 노릇도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돼지는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나 장례나 결혼, 세례 같은 일을 치를 때, 병을 앓을 때, 새 학기가 시작하는 10월에 학비나 책값을 지불해야할 때 팔아서 요긴하게 썼습니다.
1982년 국제기구는 아이티의 농민들에게 돼지가 병들었으니 그 질병이 북쪽의 다른 나라로 퍼지지 않게 도살해야 한다고 단언했습니다. 병든 돼지 대신 더 나은 돼지들이 들어올 것이라는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개발 프로젝트에서도 보기 힘든 고도의 효율성으로 13개월동안 크리올 돼지들은 모두 도살되었습니다.
2년후 미국의 아이오와에서 크리올 돼지보다 더 낫다는 새 돼지들이 들어왔습니다. 그 돼지들은 워낙 훌륭한 지라 아이티 인구의80퍼센트가 식수난에 처해 있는데도 깨끗한 식수를 먹게 해야 했고, 당시 아이티의 1인당 국민소득이 130달러인 상태에서 90달러나 하는 수입 사료를 먹여야 하는데다가 덮개가 있는 돼지우리까지 있어야 했습니다. 아이티 농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없이 그 돼지들에게 "프랭스 아 캬트르 피에(네 발 달린 왕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기의 맛도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새 돼지의 이주 계획은 완전한 실패였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본 한 관계자는 아이티 농민의 손실액이 6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시골 학교에 등록한 학생수는 30퍼센트가 떨어졌고, 시골 사람들의 단백질 섭취량도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농촌 경제가 황폐화될 만큼 자본이 이탈했고, 이 일로 아이티의 토양과 작물의 생산성은 수치로 따지지도 못할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이티 농민들은 오늘날까지도 그때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티 시골 마을 대부분은 여전히 지구적 시장들에서 고립되어 있었고, 많은 농민들에게는 크리올 돼지의 전멸이 그들이 겪은 최초의지구화였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경험이 집단적인 기억으로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이티 농민들은 '경제개혁'이나 민영화가 그들을 이롭게 하리라는 얘기를 들을 때면 이해할 만하기는 하지만 아주 조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입니다.국영기업이 병들어 민영화해야만 한다고 우리가 말해보지만, 농민들은 크리올 돼지를 떠올리며 고개를 젓습니다.
1997년에국영 밀가루 제조공장을 판 것도 농민들을 더욱 회의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밀가루 공장의 한 해 수익을 어림잡아 계산해도 연간 2천만-3천만 달러는 되는데 고작 9백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그 밀가루 제조 공장은 아이티의 가장 큰 은행과 연계된 투자 그룹의 손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국영기업을 팔아넘기는 것은 1퍼센트의 부자들이 아이티 전체 부의 45퍼센트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의 편중을 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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